대사관의 두꺼운 유리벽, 그리고 17살의 선택 광화문의 미 대사관 앞, 17살 민재의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옆에서 팔을 잡아끄는 어머니의 손아귀 힘은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민재야, 엄마 말 들어. 한국에서 의대 가고 공무원 하려면 미국 시민권 그거 짐만 돼. 군대 문제도 그렇고, 나중에 세금 문제 복잡해지면 너만 손해야. 아빠랑 상의 다 끝난 일이니까 넌 그냥 시키는 대로 서명만 하면 돼." 민재는 입술을 깨물었다. 태어난 곳은 미국이었지만, 기억의 대부분은 한국에 있었다. 하지만 민재에게 미국 시민권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었다. 언젠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겠다는 막연하지만 소중한 꿈의 티켓이었다. 부모님은 그 꿈을 '철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한국 사회에서의 안정적인 정착, 그것이 부모님이 민재에게 바라는 유일한 길이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시민권 업무 창구 앞에 섰다. 두꺼운 방탄유리 너머로 푸른 눈의 영사가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준비해 온 서류 뭉치를 내밀며 유창한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우리 아들이 한국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시민권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여기 신청서 작성했습니다." 영사는 서류를 잠시 훑어보더니, 부모님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통해 민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Parents, please step back. I need to speak to the applicant directly. (부모님은 물러나 주십시오. 신청자와 직접 대화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당황하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영사의 표정은 단호했다. 영사는 통역을 통해 민재에게 다시 물었다. "학생, 본인의 의지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까? 이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즉 미국에 자유롭게 거주할 권리를 영구적으로 잃게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까?"...